Sweets for you
K/G&K


 얼마 전까지의 추위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낮의 햇살은 부드러웠다. 한동안 휑하던 거리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번화가의 외곽에 있는 카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안쪽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 익숙한 얼굴은 없었다. 조각 케이크가 올라간 접시와 음료를 양손에 들고 잠시 고민하던 카르나는 야외 테라스 쪽으로 발을 돌렸다. 


 "호오, 잘 찾아왔구나."


 과연 찾던 얼굴은 그곳에 있었다. 손에 든 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카르나는 물었다.


 "춥지 않겠는가?"

 "상관없지 않느냐. 오늘은 날이 꽤나 좋은 것을."


 길가메쉬는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따뜻한 날이긴 했다. 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서는 봄내음이 물씬 풍길 정도였다. 하지만 2월이라는 말이 주는 겨울의 느낌 때문인지 안쪽이 만원임에도 불구하고 테라스에 나와 앉은 사람은 그들 둘 뿐이었다.


 "확실히 그렇군."


 카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번잡함을 피할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 길가메쉬에게 커피를 건네고, 카르나 자신은 포크를 들어올렸다. 윤기 나는 초콜릿으로 감싸진 케이크의 표면이 은색 포크 밑에서 파삭 부서졌다. 그 조각 중 하나를 집어 올리며 카르나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음?"

 "평소에 비해 오늘은 특히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무슨 축제라도 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르나는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달콤하면서도 약간 쌉쌀한 맛이 묻어나는 이곳의 초콜릿 케이크는 근방의 명물이었다. 그렇다고는 해서 이렇게 붐빈 적은 없었는데. 계속 의문스러운 표정의 카르나를 바라보던 길가메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정말 모르는 게냐?"

 "무얼?"

 "네가 오늘 여기 오자 하기에 꽤나 대담한 짓을 한다고 감탄하였거늘, 모르고 한 일이었단 말이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길."


 집에서 빈둥거리는 길가메쉬를 끌고 밖에 나온 것은 카르나 자신이 맞지만, 그 이유는 단순히 이 가게의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길가메쉬의 태도로 보아 무언가 카르나가 알지 못하는 것이 더 있는 듯했다. 눈을 깜빡이며 한참 동안 길가메쉬를 바라보자, 그는 곧 한숨을 내쉬며 정답을 알려주었다.


 "발렌타인 데이라는 것이다. 알고는 있느냐?"

 "발렌타인? ……아아."


 카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렌타인 데이. 기원은 어느 성인의 축일이라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매개물이 되는 것은 바로 카르나가 입에 넣고 있는 이 달콤쌉쌀한 갈색의 간식인 것이다. 순간 카르나의 눈이 커졌다.


 "아, 그래서."

 "쯧. 알아차리는 게 늦구나. 오늘 이 거리는 어딜 봐도 연인들 천지인 것을."


 길가메쉬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카페 안쪽에도, 거리에도,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가득했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너 답구나."

 "알았다면 길 몫의 케이크까지 주문했을 텐데."

 "흐응."


 커피로 입술을 적시던 길가메쉬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게 줄 마음은 있다는 말이냐?"

 "당연하지 않은가."


 사랑을 전한다고 한다면, 그 대상이 될 사람은 눈앞에 있는 이 남자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주문을,"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카르나를 길가메쉬가 손짓으로 만류했다. 따분해 보이던 눈가에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그대로 멈춘 카르나의 손목을 잡아끌며, 길가메쉬는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톡톡 쳤다.


 "?"

 "자, 여기 와 앉아라."

 "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긴 공공장소다."

 "그래서?"

 

 미약하게 저항을 해 보았지만 역시나 씨도 안 먹혔다. 길가메쉬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카르나의 손목을 쥐고 있는 힘은 여전히 굳건했다. 망설이는 카르나의 귓가로 달콤한 유혹의 말이 흘렀다.


 "보아라, 이 테라스에는 아무도 없지 않느냐? 그리고 저 안의 연인들은 저들의 사랑놀음에 바빠 이쪽은 신경 쓰지도 않을 게다. 무엇이 그리 신경 쓰이느냐?"

 "……."


 이런 상황에서 고집을 부려봤자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본의는 아니었지만 조금 실망을 안겨준 것 같은 미안함도 작용했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길가메쉬의 말대로 이쪽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크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카르나는 그의 손이 이끄는 대로 무릎 위에 앉았다. 그냥 앉기만 해서는 중심을 잡을 수 없어 그의 목 뒤로 팔을 두르자 완전히 안겨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길가메쉬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자, 그럼. 초콜릿을 받아보도록 할까."

 "……?"

 "네가 지금까지 먹던 것이 있지 않느냐."


 머리를 감싸 안은 손이 부드럽게 뒤통수를 눌렀다. 카르나가 눈을 감을 틈도 없이, 길가메쉬의 혀가 초콜릿 자국이 남은 입술을 핥아 올렸다. 그것이 초콜릿보다도 더 달콤하다고 느낀 순간, 카르나는 길가메쉬의 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길, 그만."

 "부끄러운 게냐?"

 "아니, 그게 아니라……."


 이대로라면 어쩐지 또, 그에게서 받기만 하는 느낌이 든다.


 어디에서 그런 대담함이 나왔는지, 카르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스한 햇살과 공기 중에 가득한 달콤한 향기에 마음이 들떴는지도 모른다. 


 "……!"


 케이크의 위에 올려진 작은 초콜릿 장식을 집어 입 안에 넣고, 그대로 비스듬히 고개를 숙였다. 입을 맞댄 순간 길가메쉬가 작게 숨을 들이키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당황하는 것이 조금은 기뻤다. 겹쳐지는 혀 사이로 초콜릿이 녹아들며 질척한 소리를 냈다. 시선의 끝에 들어오는 파란 하늘 조각이 부끄러워 눈을 감자, 남아 있는 모든 감각이 그를 향했다.


 질식할 정도로 달콤한 사랑이었다.

 

 "으음……, 후, 하."


 옅은 커피향이 느껴지던 길가메쉬의 입 안이 초콜릿으로 가득 찰 즈음, 카르나는 숨을 몰아쉬며 길가메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저질러놓고 보니 길가메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


 그러나 금방이라도 자신을 놀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길가메쉬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견디다 못해 살며시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살짝 찡그린 길가메쉬의 표정이 있었다. 화가 난 것처럼도,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길……?"

 "멍청한 놈."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자 짓씹는 듯한 말이 돌아왔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붉은 눈동자에 소름이 돋은 순간, 몸이 그대로 들어올려졌다.


 "잠깐, 길! 이게 무슨."

 "감히 이 몸에게 그런 도발을 하다니, 꽤나 대담하지 않느냐."


 기꺼이 받아주도록 하지. 낮게 일렁이는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카르나는 다시 한 번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이미 주위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못하게 된지 오래였다.


 아무래도 오늘의 데이트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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